이명박 정부가 임기 막바지에 기어코 케이티엑스(KTX)를 분할해서 재벌기업에 운영권을 넘길 모양이다. 정부와 한나라당이 ‘뻔질나게’ 공청회와 토론회를 주도하며 바람잡더니 급기야 주무부처인 국토해양부가 2012년 대통령 업무보고를 통해 ‘상반기 중 민간업자 운영 참여’를 공식화했다. KTX 사업은 철도공사가 운영하는 88개의 노선 중 경인선 전동차와 더불어 유일하게 흑자를 내는 사업이다. 그러다보니 KTX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적자선을 보조(공공성 유지)해 오던 철도에 비상이 걸렸다.

철도공사는 이명박 정권 들어 공기업선진화 계획의 표적이 돼 왔다. 공기업 중 가장 많은 5천 115명의 정원을 감축했고 임금삭감, 복지축소를 단행했다. 고속철도 2단계 개통, 경춘선 전철화 등 사업이 늘어나는데도 인력을 충원할 수 없어 외주화와 정비업무축소가 일상화되고 있기도 하다. 이렇게 강도 높은 구조조정 과정에 뜬금없이 알짜배기 사업을 떼어내 재벌기업에 넘긴다고 하니 더욱 납득하기 어렵다.

이번 KTX 운영사업에 진출할 재벌기업은 철도공사가 부담하고 있는 인프라 비용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차량리스를 포함 각종 시설물을 저가로 임대하는 방식을 제안한다고 하기 때문이다. 땅 짚고 헤엄치기만큼 쉽게 돈벌이 할 수 있도록 특별한 혜택을 준다는 것이다.

▲ 정부가 지난 달 27일 대통령 업무보고를 통해 KTX 분할민영화를 구체화했다. 같은 날 서울역에서 열린 집회에서 철도노조는 즉각철회를 촉구했다. 사진=철도노조
재벌기업이 철도에 진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인천공항철도, 지하철 9호선(서울), 신분당선 등에 이미 재벌기업은 진출해 있다. 현대 등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참여한 인천공항철도는 최소운영수입보장(MRG) 방식으로 운영하면서 2년간 2천 700억 원의 국민 혈세를 뽑아먹었다. 정부는 재정압박이 커지고 여론이 악화되자 2009년 철도공사에 그 운영권을 인수토록 했다. 요금은 기존 전동차에 비해 2배에서 많게는 8배에 달한다.

9호선 역시 현대 등이 참여하고 있으며 MRG 방식에 의해 2010년에만 376억 원의 정부지원금을 받아먹었다. 이명박 친인척이 관여한다고 알려진 맥쿼리가 24.5%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버스와의 환승도 불가능하며 요금도 여론에 밀려 900원(1구간)으로 정했지만 재협상을 통해 언제든지 올릴 수 있도록 했다.

재벌의 철도진출, 처음이 아니다

2011년 10월 개통한 신분당선도 두산, 동부 등이 참여하고 있다. MRG방식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운임을 기존전동차 보다 78%나 높은 1600원으로 책정했다. 현대 등이 참여한 김해경전철도 MRG 방식인데 승객이 예상치의 17%밖에 되지 않아 년 간 1000억 원에 달하는 정부보조금이 들어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1구간 운임은 기존전동차 보다 44% 비싼 1천 300원이고 65세 이상 노인의 운임할인이 없어 원성이 자자하다.

용인경전철은 대림산업 등이 참여해 2010년 완공했으며 예상수입의 90%를 보장한다는 MRG 방식이다. 안전성, 운영방식, 공사비 등과 관련하여 시공사와 용인시간 다툼이 발생해 개통이 무기한 연기됨으로써 지역주민의 불만이 폭발일보 직전이다. 국제중재법원이 용인시로 하여금 건설사에게 5천 159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상태다.

이들 재벌기업이 진출한 철도사업의 경우 매표소를 설치하지 않는 것은 기본이고 기관사 없는 무인운전을 선호하고 있다. 나머지 시설유지보수 업무 등 대부분이 외주화되거나 계약직을 활용하고 있다. 정규직 일자리는 눈을 씻고 찾으래야 찾아볼 수 없다.

비싼 운임, 천문학적인 혈세투입, 비정규직 양산, 안전위협 이것이 바로 정부와 한나라당이 ‘효율적 경영’이라고 칭송해 마지않는 우리나라 민영철도의 실체이다. ‘공공성’을 지켜나가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적자가 발생하고 있으나 철도공사는 어느 공기업보다도 재무구조가 튼튼하고 경영실적이 우수하다. 1인당 노동생산성도 높아 여객부문은 OECD국가 중 5위이다. 경영효율은 지금의 공기업 구조로도 차고 넘친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철도공사의 알짜배기 KTX사업마저 재벌기업에게 넘겨주려 한다. 국민 누구나가 저렴하고 편리하게 이동해야 하는 권리마저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시키려는 것이다. 철도의 공공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절실한 때다.

지영근 / 전국철도노동조합 조직강화특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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